30대女 혼자놀기 경험담…”속 편하고, 안 번거롭고, 돈 덜쓰고”

“이렇게 혼자 먹고 놀고 즐기는 데 필요한 것들이 다 있는데 혼자면 어때요.”

민족 대이동과 가족·친지 간 재회가 전국 곳곳에서 한 창이던 지난 28일 설날. 30대 미혼 여성 직장인 김 모(31·서울) 씨는 스스로 ‘외톨이’ 생활을 선택했다.

“시집은 언제 가니”, “사귀는 사람은 있니”

친척들의 ‘안부’를 가장한 이런 잔소리를 피해 딱히 목적지 없이 집을 나선 김 씨는 평소 쌓아놓은 ‘혼자 놀기’ 내공을 마음껏 발휘하기로 했다.

먼저 아침 겸 점심을 때우기 위해 집 근처 편의점을 찾은 김 씨는 오색 전, 동그랑땡 등 차례상 음식이 가득 담긴 명절용 도시락을 집어 들었다.

명절마다 엄마와 함께 기름 냄새에 절도록 부쳤던 음식을 이렇게 간편하게 즐길 수 있다니, 전을 한 입 베어 문 입에서 “세상 참 좋아졌다”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.

맛은 나쁘지 않았으나 양이 살짝 부족해 디저트로 낱개 포장된 ‘호빵’도 전자레인지에 데웠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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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포장 호빵은 ‘4~5개들이’가 기본이었지만, 1인 가구에는 부담스러운 양이어서 최근에는 낱개 포장으로 바꾸면서 매출도 크게 늘었다고 편의점 점원이 설명했다.

김 씨도 먹다 남은 호빵을 냉동실에 보관했다가 결국 버린 기억을 떠올리며 ‘좋은 아이디어’라고 생각했다.

적당히 배를 채운 김 씨는 커피 향을 쫓아 서울 광화문 한 카페를 찾았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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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울 시내 커피전문점들은 항상 사람들로 북적이지만, 이날은 설 휴일이라 비교적 한산한 편이었다.

하지만 유독 혼자 커피를 즐기러 온 사람들을 위한 ‘1인용 소파’의 경우 이날 역시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인기였다.

대형 테이블에서 20분쯤 기다리다가 1인용 소파로 겨우 자리를 옮긴 김 씨는 푹신한 소파에 몸을 맡긴 채 창 밖 도심 겨울 풍경을 구경하며 커피를 홀짝였다.

한 시간여 커피전문점 소파에서 책까지 읽은 김 씨는 문득 ‘오랜만에 영화나 한 편 볼까’하는 생각에 인근 영화관으로 향했다.

대학생 시절만 해도 김 씨뿐 아니라 주변에서도 혼자 영화관에 가는 것은 드물고 어색한 일이었지만, 요즈음 시대에 혼영(혼자 영화 보는 것)은 전혀 어색하지 않은 행위다.

김 씨는 혼영을 할 때에 주로 앞에서 두 번째 줄, 가운데 자리에 앉는다. 주로 뒤쪽 좌석에 앉아 얘기를 주고받으며 영화를 보는 커플 연인, 가족, 친구 동반 관람객들을 피하기 위해서다. 특히 이날 양옆 좌석에까지 아무도 앉지 않자, 김 씨는 ‘영화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는 운 좋은 날’이라고 생각했다.

묘한 여운을 안고 영화관을 나선 김 씨는 갑자기 출출함을 느끼고 주변을 둘러봤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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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실 김 씨 역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외식 ‘혼밥(혼자 밥 먹기)’에는 자신이 없었다. 그래서 불가피하게 혼밥을 해야 하는 경우, 눈치가 덜 보이는 시내 해장국, 칼국수 집을 찾는 경우가 많았다.

하지만 언제부터인가 ‘바쁜 생활 탓에 혼자 끼니를 챙기는 것인데, 눈치 볼 이유가 없다’는 생각에 가장 먹고 싶은 것을 골라 당당하게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게 됐다.

한 소고기 요리 전문점 테이블에 홀로 앉은 김 씨는 2만6천900원짜리 1인용 세트와 와인 한잔을 주문했다.

예전 같으면 고기 요리를 혼자 시켜 먹는 여성을 옆 테이블 손님들까지 흘깃거리며 ‘구경’했겠지만, 최근에는 고기건 어떤 메뉴건 혼밥하는 사람이나 식당이나, 주변 손님들도 전혀 어색하게 여기지 않는다.

배는 부르고 밤도 깊었으나, 설날 감정·육체노동을 피해 ‘가출’했다가 고기와 술 냄새까지 풍기며 돌아가면 엄마의 잔소리가 배가 될 것 같아 김 씨는 일단 PC방에 들렀다.

PC방에서 김 씨는 올해 추석 연휴가 길다는 기사를 읽다가 즉흥적으로 추석 연휴 일본행 비행기 표 한 장을 예매했다. ‘올해 추석 명절에는 서울 거리를 이렇게 배회하지 말아야지’라고 다짐하면서.

여행을 같이 다니던 친구들이 하나둘 결혼하면서, 이제 ‘혼행(혼자 여행)’도 익숙해진 지 오래다.

일본행 비행기 출발 시각이 이른 새벽이지만, 최근 인천공항에 저렴한 1인 캡슐 호텔까지 생겼다니 김 씨는 설 연휴 이후 자세한 이용 방법을 찾아볼 생각이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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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일 가출을 마감한 김 씨는 “전반적으로 혼자 지내는 데 만족하지만, 가끔 TV 등에 외롭고 아픈 홀몸노인이 나오면 내 미래를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철렁할 때가 있다”고 말했다.

하지만 그는 “지금도 이렇게 ‘1인용’이 풍부한데, ‘나 홀로’족의 생활을 뒷받침해줄 더 다양한 서비스와 상품이 개발된다면 혼자 늙더라도 생활에 큰 불편은 없을 것 같다”고 덧붙였다.